- 2025 서울 합격수기 입니다. (2차 뒤집기!)
- 최*현 / 2025.02.13
안녕하세요 서울지역에 합격한 최규훈 선생님의 아픈손가락입니다 ㅎㅎ..
우선 합격수기를 작성하기에 앞서 저의 말대로 진행하셔라 가 아닌 참고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2017년도에 대학 졸업을 하고 임용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비사범대 출신에 교직이수로 정말 정보하나 없는 수험생이었습니다.
무작정 노량진으로 가 학원을 돌면서 설명회에 참석하여 강사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중 규훈샘은 그 해 시험문제를 복사해 A형과 B형 모두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고 홀린듯이 바로 결제하게 되었습니다..ㅋㅋ
그당시 직강 수강생은 절 포함해 20명이 채 안됐습니다. 정말 가족같은 분위기 개인 과외같은 학습 분위기 속에서 공부했던게 붙고 나서도 생생하게 생각납니다ㅎ
그때 항상 강조하셨던 것은 노트정리였습니다. 공부와 거리가 멀던 저는 그냥 노트에 마냥 정리하는건가 했는데 항상 노트를 검사받으며 수정하고 보완 또 보완했습니다.
그치만 첫술에 배부르랴.. 시험의 난이도는 어렵고 쉽고를 떠나 긴장한상태로 시험을 봐서 그런지 5점차이로 떨어졌습니다.
그 후 재수 삼수 ...... 실력은 항상 향상했다고 느끼고 그렇게 많은 인원속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유지해오던 저는 매년 아주 자잘한 실수.. 때문에 1점, 0.17점(경기) 등 아주 생각치도 못한 점수로 1차에 낙방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것을 다 알고 외웠다라는 자만때문에 실제 시험때 꼼꼼하게 읽지 않고 아는학자, 아는 이론이 나오면 그 즉시 원하는 답이 아닌 다른 답을 작성했습니다. 정말 1차 발표가 날때 쯔음 매년 겨울은 누구보다 추웠고 어두웠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4수.. 침착하게 꼼꼼하게 읽으며 실수를 줄이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이때만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날은 없을정도로 환경이나 조건들이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이틀 앞두고 노량진 집단감염으로 인해 코로나 확진이라는 문자를 받고 남들은 시험보러갈때 저는 용인에 있는 치료센터로 이송되었습니다. 정말 안좋은 선택을 생각할정도로 힘들고 마음이 버티질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규훈샘을 비난하고 심지어는 직강에 바득바득 나간 저희의 잘못이라고 손가락질 하더군요..ㅋㅋ 신경안쓰고 안보려고 해도 사람마음이 그게 안되더라구요
더 멘탈이 흔들려 그 다음해에 의욕은 바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곧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소개로 인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됩니다. 그 학교에는 저와 또래인 선배교사가 있었고 많은 도움을 얻어 업무면 업무, 공부면 공부 모든 부분에서 도움을 받아 다시 교사로의 꿈을 위해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처음해보는 학교일, 담임생활 등 학교생활에 치여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3년동안 일만하며 임용과는 다소 거리가 먼 행보를 걸었습니다. (저처럼 일병행을 하려는 선생님이 계시다면,, 생활고를 제외하고는 시간강사를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주변의 선배, 후배, 친구들이 붙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진짜 제대로 준비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우선은 3월부터 6월까지는 기출문제를 처음부터 훑으면서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교재를 회독해가면서 다시 노트정리를 시작했습니다.
한번 속도가 붙으니 노트정리+지도사정리까지 끝내게 되더군요..
그치만 학교일이 정말 많았..(학교스포츠클럽대회 축구 남부교육지원청 우승/ 배구 서울시 우승으로 전국대회를 광주로 다녀왔습니다 ^^;) 지만 퇴근하고 오자마자 바로 씻고 간단한 간식만 싸들고 독서실로 향했습니다. 오히려 가속이 붙으니 강박이 생기고 해야할 것들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예전에는 절대적인 시간만이 학습의 지표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효율적으로 공부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전에 하던 공부 스타일과 다르게 바꿔서 공부하였습니다.
우선 전공은 모의고사 하나 풀고 틀린내용 복습, 틀린 문제와 관련된 이론들 전부 살펴보기/대학이론서와 똑같은 규훈샘 교재 회독하며 노트정리하기(이때 노트정리만 한 서너번 한 것 같습니다!)/한 과목당 한시간의 시간을 두고 시간이 지나면 보던 파트까지만 딱 보고 접었습니다.
그리고 규훈샘과 함께했던 모든 문제들을 4~5번은 다시풀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된 모의고사에 치이다 보면 이전에 학습한 내용은 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모의고사를 풀면서 이전에 풀었던 문제들을 같이 풀었습니다.
모든 정리가 끝나고 집에가기 전 한 시간은 교육학 교재 읽기 및 써보기 한 시간은 문서 외우기를 하며 나름의 쿨 다운을 실시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시험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가족들의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말투와 눈빛들, 주변 지인들의 걱정 등등이 느껴진 하루였습니다.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해 두렵고 외롭고 지치는 하루를 보냈지만 그것마저도 사치라 생각하고 계속 밀어붙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험을 무사히 치루고....
결과는 컷에서 +0.34높게 합격했습니다. 처음보는 합격창에 어안이 벙벙하고 손이 떨리더군요.. 그저 1차합격일뿐인데.. 아버지 어머니 모두 펑펑 우시더군요.
저도 그날은 코로나 걸려 시험못본 해 만큼 울었던 것 같습니다 ㅋㅋ
그렇게 모두의 축하를 받는것도 잠시.. 2차준비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제 점수면 1.5배수중 1.4배수일텐데 말이죠..
정말 이때부터는 돈도 아끼지 않고 실기면 실기, 면접책이면 면접책, 수업실연이면 수업실연 교재를 닥치는대로 사들이고 합격한 사람의 학교에 찾아가 수업실연을 평가받았습니다.
그래도 학교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면접과 수업실연에서는 나름 좋은 평가를 받으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만약 그게 아닌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잠을 쪼개서라도 이사람 저사람 만나면서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도 면접과 수업실연을 재생할 수 있는 기계가 될 수 있도록 만드세요.)
실기는 나름 좀 한다고 생각했지만 체중이 많이 증가하여 일단은 감량을 하면서 무리하지 않게 준비했습니다.
다행히 2차시험 실기날 변별이 되는 평가들이 많았고 실기에서는 거의 최상위 점수(25.xx) 를 받게 되었습니다.
수업실연에서는 운동종목이 아닌 팝스가 나왔는데 마지막 조건을 제외하고는 무난했으며 마지막 조건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자신감 있게 평가관들 앞에서 혼신의(?)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ㅎㅎ
지도안은 8점, 수업실연은 18.xx가 나왔습니다!
마지막 면접은 정말 무난하게 답변 잘 했지만ㅋㅋ.. 마지막 추가문제에서 대답을 못하고 한 30초를 멍때렸네요 ..
33.xx가 나왔습니다. 정말 자신있는 면접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안나와서 속상했네요..
발표날 생각보다 최종 합격선이 낮은걸 보고 바로 확인했는데 110명중에 60등을하여 약 50명정도를 제끼고 최종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최종에서 뒤집은 사례가 별로 없어 이 글을 보시는 선생님들께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같이 일자무식에 주변 정보, 지인들도 없이 독고다이로 규훈샘만 믿고 공부해 붙었습니다...
이 시험은 이제 1차점수는 의미 없습니다. 물론 8점 이상부터는 잡기가 좀 힘들지만.. 그 아래는 충분히 잡고 잡히는 싸움이 됩니다.
1차합격만 하고 2차에서 뒤집을 수 있습니다. 그치만 1차에서 규훈샘이 하라는대로 하고 저처럼 자꾸 다른길로 새지 않으면 충분히 고득점 하실 수 있을겁니다 ^^
이상으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먼길을 돌아왔습니다.. 지원해준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코로나로 입원중에 있을때 규훈샘과 통화한 내용들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서로가 너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지금은 그 기억마저도 추억이 되가네요ㅎㅎ 많은 도움주셔서 감사했습니다.